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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저주
- 윤 -
이명헌이 덮인 이불을 걷어내고 침실을 벗어났을 땐 이미 뒤처리까지 완벽한 상태였다. 잠옷을 단추 끝까지 채워 입혀놓게 최동오다웠다. 침대맡에 놓인 물을 다 홀짝인 이명헌은 몸을 일으켰다. 슬리퍼를 끌며 끊긴 기억을 더듬던 이명헌은 조용히 거실에서 홀로 영화를 보던 최동오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면에서는 주구장창 보던 뻔한 로맨스 영화들이 흘러가는 중이었다. 최동오 취향은 전부 이런 진부한 로맨스 영화들이었다.
“깨우지뿅.”
“피곤해 보이길래.”
최동오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을 이어갔다. 영화는 절절한 고백을 하는 남자의 말들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사랑해, 좋아해. 낯간지러운 말들이 관례처럼 흘러갔다. 이변 없이 이어지는 결말은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다웠다. 이명헌은 진작에 나가떨어진 집중력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결국 이명헌은 엔딩 크레딧까지 보고 나서야 기지개를 켰다. 최동오는 여전히 영화에 시야를 고정한 채였다. 감미로운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한참을 고정된 시야가 제작사 로고까지 올라가고 나서야 이명헌을 향했다.
“명헌아. 나 결혼해.”
묵묵한 표정을 한 최동오가 이명헌을 바라봤다.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몰라 무미건조한 표정을 흉내 낸 이명헌도 그저 최동오를 바라봤다. 알 수 없는 눈 맞춤은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멈춘 화면에서 일렁이는 불빛이 최동오를 조각냈다. 오늘따라 낯선 이목구비가 날카롭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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